세상에 무슨일이 일어날 것처럼 먹물빛 구름 몰리고 철마산 밤나무를 마구 흔들어 놓더라.
소집일에 청소하러온 솜털 보송보송난 태희랑, 예진이랑,윤경이, 미지는 우산이 없어 중앙현관에
쪼그리고 앉아 핸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문기는 넉살도 없어 쌍둥이 엄마가 스포티지 자리 많은 차에 개구진 남학생을 태워도 자기도 태워달라 말도 못하고
비오는데 어찌가나  어찌가나 여학생들 틈에도 끼지 못하고 내눈을 피해 도망다닌다.
아이들이 먹다 버린 찌그러진 야쿠르트병이 빨간 보도블럭 위에서 비를 맞고 있다.

얼굴만 훑어보고 주위에서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통에 한 문장의 말도 건네지 못하고 왔다.
그래도 뿌듯함이 담긴 웃음으로 '윤신아. 나 홈페이지 만들었다'는 말은 담아왔고
야학홈피에 올린 주소 보고 찾아들어와..

사진을 정성껏 찍어내고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것도 부럽더라. 이국적 정취가 느껴지는 모스크와 알록달록 버스가 있고, 파도 있고 모래 있으면 다 같은 바다이련만 다르게 느껴지는 해변이 있더라. 잠시 낮잠에서 나와는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 같더이다.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
본인은 공개를 염두해 두었겠지만 쓰고 있을 때만은 고해성사하듯 자신의 일상에 겸허해지고,  
올라온 일기를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사람은 변하는구나 새삼 느끼고.
아니 어쩌면 그 사람은 그대로 인데 내 시선이 변하는 것일 수 도 있겠고.
조금은 방랑자 냄새가 나지만 여행을 통해 한국 이곳에서  삶의 뿌리에 대한 확신을 구하려는 듯
부단하게 애쓰는 흔적이 보이더라. 나이먹으니 그런 몸의 언어가 이해가 되더이다.

점심먹고 잠시 들른 이 곳에서 지하철에서 기대어 자고 있는 부자 사진을 들여다보니
비가 그치다.